나는 평범한 여대생이다. 아무래도 제1전공이 신문방송학에 제2전공이 정치외교 예정이다보니 나름 관심있게 정치나 사회 현상을 지켜보고 있기는 하지만, 그게 다였다. 움직이기 귀찮아하고, 노는 거 좋아하고, 과제하기 바쁜 데다 이제는 기말고사 기간이라는 훌륭한 핑계거리도 갖춘 3학기생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촛불 집회에 대해 그리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촛불 문화제까지는 긍정적으로 바라보았지만, 언론이나 인터넷, 주변의 입소문을 통해서 접한 촛불 집회의 변질은 그것이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어떤 종류의 확신을 가지게 했다. 물론 이명박 정부의 한미 FTA 협상은 한심스럽기 그지 없었고(원카드로 따지자면 2-2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데 멍청하게 에이스 카드를 남발해놓은 격이었다.)우리에게 득보다 실이 훨씬 큰 결과를 가져왔다는 건 부정하지 않았다. 대운하 및 각종 민영화 등 일련의 정책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촛불 집회의 구호에 온전히 동감할 수 없었던 나는 바쁘다는 핑계를 무기로, 여러가지로 고민해보면서도 그동안 촛불 집회에 나간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점점 사태가 커지면서 이것이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되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거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그것도 소위 말하는 젊은 피로서 나는 현장에 '직접' 나가 간접적으로만 접해오던 '실체'라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현장에서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무언가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나 역시 이명박 정부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고 있었으니 그들의 구호와 아주 동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친구와 촛불 하나씩을 손에 들고 시청 광장에 나섰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솔직히 놀랐다.
조모임 이후에 저녁을 먹고 참석해서 촛불 문화제 끝난 뒤인 거리 행진만을 할 수 있었다. 처음 시청 광장에 나선 어리버리 길치인 우리였지만 본류를 타는 건 아주 간단했다. 사람들 많은 곳만 쫓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도 그 거대한 흐름의 하나가 되어있었다. 시민들은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함께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노래를 부르며 '이명박 물러가라'를 외치고 있었다. 노트북과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생중계를 하기 위해 뛰는 사람들도, 조그마한 아이의 손을 잡고 가는 부모들도, 각종 언론 보도진들도, 깃발을 펄럭이며 모여서 행동하는 각종 단체들도 있었다. 차도를 지나가는 차들 속 사람들이 피켓을 흔들고 구호를 외칠 때 사람들은 함께 호응했고 묘하게 2002년 월드컵의 그 때를 떠올리게 하는 떠들썩한 축제 같은 분위기가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2008년 시민들의 시위는 피를 흘리는 대신 흥겹게 중독성 강한 노래를 따라 부르고 구호를 경쾌하게 외치며, 일종의 축제와도 같은 떠들썩함과 온건함을 갖추고 있었다. 온건함과 평화를 유지하는 측면에서는 과거 촛불 문화제와 같았다.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구호는 분명히 변화했다. 여전히 미친 소 반대가 주를 이루긴 했지만, 그것만이 아닌 다른 일련의 정책들에도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심 구호는 '이명박 물러가라' '쥐새끼를 잡아라' 등 이명박 하야로 옮겨가 있었다. 함께 걷고는 있었지만, 이 점에서 결정적으로 난 동의할 수가 없어서 웬지 동상이몽적인 기분을 느꼈다. 분명 이명박 정부가 한심하고 또 한심해서 두심인 건 사실이지만, 아직 이 정부는 겨우 갓 100일을 넘어섰을 뿐이다. (비록 16%대로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지만)국민 과반수의 지지를 받고 민주적 선거 절체를 거쳐 뽑혔기에, 과거 4.19, 6월 항쟁 때와 상황은 또한 다른 (일단은) 엄연한 민주 정부인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하야를 외친다 한들 우리에게 대안은 없다. 구체적 대안이 없이 일단 끌어내리고 보자는 식으로 밀어붙였다간 이후에도 찾아올 것은 아노미적 상태의 혼란일 뿐이다. 현재로서는 아무리 못나고 한심해도 뜯어 고쳐서 어떻게 해봐야지 않을까하는 게 내 생각이다. 이 상태에서 더 '막장스러운' 행동을 하게 된다면 내 생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 교회 쪽에서 청와대로 가는 길이 통해있다고 한 것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곳을 통해 청와대로 가기 위해 들어섰다. 중간 중간 무언가 와장창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가 들린 게 안타까웠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로 일단 진입하고 보자는 식의 일부 시민들의 생각은 조금 씁쓸했다. 비록 이명박 정부의 대응이 '비민주적인' 행태로 가고 있다한들 우리의 촛불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방향으로 가선 안 된다. 저들은 작은 꼬투리라도 잡아 크게 부풀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지 않은가.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합법적이고 온건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청와대라는 마지노선을 과격하게 뚫을 경우, 오게 되는 것은 최악의 상황 뿐이다. 정부가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감고 있다해도 시청 광장, 광화문 거리 안의 우리의 소리는 분명 그들에게 닿고 있다. 굳이 그것을 청와대 앞에서 전해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억지춘향식으로 반발하는 것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촛불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정당한 분노와 비판을 나타내 철저하게 정부를 압박하는 게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지름길이 아닐까.


당초 예정되어 있던 '국민과의 대화'를 연기한 이명박 정부는, 6월 6일 오늘 청와대로 통하는 모든 길을 봉쇄한 채 청와대 안에서 그저 사태가 어서 빨리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오늘, 장관들의 경질에 이어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전원 일괄 사표를 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장관 몇 명, 그다지 관계도 없는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아닌 애초에 이른바 '고소영', '강부자' 로 시작한 내각을 아예 통째로 갈지 않으면 안된다. 이미 국민들의 여론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 대여섯살의 어린 아이도 '이명박 내려와'를 자연스럽게 외치는 이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언제까지 '다시 국민들의 민심이 자신을 향해 돌아올 것' 이라고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믿고 있을 것인가? 이명박 정부는 한시라도 빨리 대국민 사과와 함께 내각을 새롭게 교체하고 국민들의 여론과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노력과 변화의 의지를 보여야만 한다. 특히 굴욕협상에 졸속협상에 국민의 기본 생존권을 (그것이 몇 %이건 간에 광우병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져버렸다는 비난을 받는 한미 FTA 협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정말로' 정부 측의 의견이 옳다고 믿는다면 최소, 이에 대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편파적이지 않은 근거를 대국민 앞에 공개해서 '제대로' 설득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설령 할 말도 없고 욕만 들을 게 뻔했다한들 '국민과의 대화'를 연기한 것은 악수였다.
6월 6일 현충일. 순국선열을 기리는 날. 이 날 시청 광장에, 광화문 거리에 모인 사람들은 이유가 어떻든 하나같이 혼란스럽고 불안한 시국이 걱정되어서, 우리나라가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나온 이들일 것이다. 비록 여전히 난 촛불 집회의 변화에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지만 현장에 직접 나가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촛불이 가진 변화와 생성의 에너지를. 비록 촛불집회가 일부에 의해 다소 변질되고 급진적으로 변모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촛불은 유쾌하면서도 날카로운, 어디까지나 평화를 추구하는 변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새벽 2시 32분, 여전히 우리의 촛불은 타오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난 이제 그 촛불들이 가진 시대를 바꾸는 힘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P.S 긴 글 주제에 못 접어서 죄송합니다 (--)(__)(--)
P.S 2. 사실 1/3만 체험한 글이라 많이 부족합니다. 본편인 새벽반을 체험하고 싶었지만 일단 저희 집은 딸네미가 집회 나가는 것에는 반대하셔서 -특히 외박하면 다리를 부러뜨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어쩔 수 없었네요. 내일은 다리 부러질 거 각오하고 새벽 뛸까.
P.S 3. 전경 얼굴도 제대로 못봤는데 저한테 '전경 패지 마라' '전경은 죽이면 안 돼'라고 말한 동기 및 선배님들 잊지 않겠습니다 -┏